
지금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보세요.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왜 하필 60일까요? 100으로 나누면 훨씬 깔끔할 텐데,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숫자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 답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막 한복판에 있던 한 도시에 있습니다. 이름은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어느 날 밤,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없이 하룻밤 만에 사라졌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도시 자체는 무너졌지만 그 도시가 만든 것들은 지금까지 우리 곁에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시계 속 60분, 아침에 무심코 보는 별자리 운세, 심지어 '당한 만큼만 갚아야 공정하다'는 감각까지 — 모두 바빌론에서 시작됐습니다. 하늘에 닿으려던 도시가 어떻게 무너졌고, 무엇을 남겼는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바빌론이 남긴 것, 한눈에 보기
| 유산 | 내용 | 오늘날의 흔적 |
| 60진법 | 1시간 60분, 1분 60초, 원 360도 | 시계·각도 단위 그대로 사용 |
| 함무라비 법전 | 복수에 상한을 둔 성문법 | 비례 원칙의 출발점 |
| 천문 기록 | 수백 년간 밤하늘 관측·기록 | 12별자리, 월식·행성 예측의 뿌리 |
| 거대 건축 | 성벽·성문·계단식 거대 탑 | 바벨탑 전설의 실제 모델로 추정 |
사막 한복판, 진흙으로 세운 인류 최초의 대도시
바빌론은 지금의 이라크,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땅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집트는 돌을 깎아 피라미드를 세웠지만, 바빌론 주변에는 온통 진흙뿐이었습니다.
해법은 단순했습니다. 강가의 진흙을 네모난 틀에 찍어 햇볕과 불에 구워 벽돌을 만든 것입니다. 수천만 장의 벽돌로 거대한 성벽, 넓은 대로, 화려한 궁전이 들어섰고, 사막 한복판에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가 탄생했습니다. 도시 입구에는 푸른 유약 벽돌로 뒤덮인 거대한 성문이 서 있었는데, 그 푸른빛이 멀리서도 빛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갖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눈에는 눈"은 복수의 법이 아니었다
바빌론이 세운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한 왕이 만든 법전입니다. 왕의 이름은 함무라비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은 무섭고 잔인한 복수의 법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법이 나오기 전에는 복수의 끝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내 눈을 다치게 하면 나는 그 사람을 죽이고, 그러면 그 가족이 다시 내 가족을 해치는 식으로, 한 번 싸움이 나면 온 집안이 서로를 해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무라비는 여기에 선을 그었습니다. 당한 만큼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을 다쳤으면 상대의 눈까지만, 목숨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 핵심 정리
"눈에는 눈"은 복수를 부추기는 법이 아니라, 끝없는 복수를 멈추기 위한 인류 최초의 브레이크였습니다. 게다가 이 법전에는 빌린 돈의 이자, 결혼과 이혼, 물건을 맡겼다가 잃어버렸을 때의 처리 같은 생활 속 규칙이 4,000년 전에 이미 적혀 있었습니다.

왜 하필 60인가 — 나누기 편한 최고의 숫자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60일까요? 60진법은 사실 바빌론보다 먼저 같은 땅에 살던 수메르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고, 바빌론이 이를 물려받아 시간과 하늘을 재는 데까지 갈고닦았습니다. 이들이 숫자를 열 개씩 묶지 않고 60개씩 묶은 이유는 놀랍도록 실용적입니다. 60은 유난히 많은 수로 깔끔하게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 나누는 수 | 10으로 나눈 결과 | 60으로 나눈 결과 |
| 2명 | 5씩 딱 떨어짐 | 30씩 딱 떨어짐 |
| 3명 | 딱 떨어지지 않음 | 20씩 딱 떨어짐 |
| 4명 | 딱 떨어지지 않음 | 15씩 딱 떨어짐 |
| 5명·6명 | 5명만 가능 | 12씩·10씩 딱 떨어짐 |
바빌론은 이 60을 시간에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 하늘의 둥근 원을 360도로 나눈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18세기 프랑스에서 학자들이 모든 것을 10단위로 바꾸려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하루를 10시간, 1시간을 100분으로 바꾸자는 시도였지만, 사람들은 끝내 따르지 않았고 그 시도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4,000년 전 바빌론이 정한 시간을 현대 과학도 바꾸지 못한 셈입니다.
하늘에 닿으려던 탑과, 있었는지조차 불확실한 정원
바빌론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 느부갓네살 왕은 도시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계단식 탑을 세웠습니다. 진흙 벽돌 수천만 장을 쌓아 올린 이 탑은 높이가 90m가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으로 치면 30층 아파트 높이입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이 탑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고 믿었고, 탑의 이름도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탑이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 않으신가요?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다가 무너졌다는 오래된 이야기, 바로 바벨탑 전설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전설 속 탑의 실제 모델이 바로 이 바빌론의 탑이라고 봅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탑이 전설이 된 것입니다.
반면 바빌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공중 정원은 정반대의 미스터리를 안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느부갓네살 왕이 먼 산악 나라에서 시집온 왕비를 위해 사막 한복판에 층층이 나무가 우거진 거대한 정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이 유명한 정원이 정말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세금도, 법도, 왕의 자랑도 점토판에 꼼꼼히 기록했는데, 그 수많은 기록 어디에도 공중 정원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정원 터로 추정되는 흔적도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지금도 갈립니다. 정말 있었는데 흔적이 사라졌다는 주장, 그리스인들이 부풀린 이야기라는 주장, 심지어 정원이 바빌론이 아니라 옆 나라 다른 도시에 있던 것을 사람들이 헷갈린 것이라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이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밤하늘을 기록한 사람들 — 별자리의 시작
바빌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높은 탑에 올라 별과 달의 움직임을 점토판에 기록했는데, 수백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으로 이들은 언제 달이 가려지는지, 별이 어디에 뜨는지 미리 계산해 냈습니다. 오늘날 천문학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들은 하늘을 12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 동물과 사람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양, 황소, 사자, 전갈 — 눈치채셨나요? 오늘날의 별자리입니다. 아침에 무심코 본 별자리 운세가 4,000년 전 바빌론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룻밤 만에 무너진 세계 최강 도시
느부갓네살 왕이 세상을 떠난 뒤 바빌론은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왕들이 자주 바뀌고 나라 안이 어수선해졌습니다. 바로 그때 동쪽에서 페르시아가 무섭게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빌론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성벽이 너무나 높고 두꺼웠기 때문입니다. 전차 여러 대가 성벽 위를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였고, 강물이 도시를 가로질러 흘러 물도 걱정 없었습니다. '이 성벽 안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왕은 성벽을 넘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엉뚱한 곳을 노렸습니다. 바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그 강이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도시 상류에서 강물의 물길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습니다. 도시 안에 흐르던 강물이 점점 얕아졌고, 그날 밤 바빌론은 마침 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성벽만 믿고 방심한 사이, 페르시아 군대는 얕아진 강바닥을 따라 성벽 밑으로 소리 없이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했던 도시가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없이 하룻밤 만에 함락됐습니다. 기원전 539년의 일입니다.
📌 왜 무너졌을까 — 두 가지 원인
첫째, 자만입니다. 거대한 성벽만 믿은 나머지 강물의 허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둘째, 분열입니다. 위대한 왕이 떠난 뒤 나라 안은 이미 갈라져 있었고, 도시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 마음이 크지 않았습니다. 가장 튼튼한 성벽을 가졌기에, 바빌론은 오히려 성벽 밖의 위협에 눈을 감았습니다. 가장 강했던 것이 가장 방심하게 만든 약점이 된 셈입니다.

오늘날의 의미 — 무너진 것과 남은 것
도시가 무너진 뒤 하늘에 닿으려던 탑도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 튼튼한 벽돌을 하나둘 빼내 다른 건물을 짓는 데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푸른 성문도, 하늘에 닿으려던 탑도, 지금은 사막의 흙더미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빌론은 정말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시계를 볼 때마다 1시간이 60분인 것도, 1분이 60초인 것도, 그 뿌리에는 수메르가 처음 쓰고 바빌론이 완성한 60이 있습니다. 아침에 무심코 본 별자리 운세도 바빌론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작한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한 만큼만 갚아야 공정하다'고 느끼는 마음마저 4,000년 전 함무라비가 그은 선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하늘에 닿겠다고 거대한 탑을 쌓았던 사람들 — 그 탑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나눈 시간과 법과 별은 4,000년 뒤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정말로 하늘에 닿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바빌론의 이야기는 '강함'의 정의를 다시 묻게 합니다. 칼로 세운 제국은 칼에 무너지면 끝이지만, 머리로 만든 것은 4,000년을 살아남았습니다. 성벽은 무너졌고 탑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시간·법·별은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 있습니다. 오늘 시계를 볼 때, 별자리를 볼 때, 바빌론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 곁에서 작동하고 있는 유산으로 말입니다.
Q&A
Q. 60진법은 바빌론이 처음 만든 것인가요?
A. 60진법의 뿌리는 바빌론보다 앞선 수메르에 있습니다. 바빌론은 이를 물려받아 시간(60분·60초)과 하늘(360도)을 재는 체계로 완성했고, 그 체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Q. "눈에는 눈"은 정말 잔인한 법인가요?
A. 아닙니다. 오히려 복수에 상한을 둔 법입니다. 당한 만큼만 갚도록 제한함으로써 끝없는 보복의 고리를 끊으려는 취지였고, 현대 법의 비례 원칙과도 통합니다.
Q. 바빌론 공중 정원은 정말 존재했나요?
A. 아직 확정이 없습니다. 바빌론의 점토판 기록 어디에도 정원 이야기가 없고, 유적도 뚜렷하지 않아 실재 여부 자체가 학계 논쟁거리입니다. 다른 도시의 정원을 혼동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Q. 바빌론은 왜 하룻밤 만에 함락됐나요?
A.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군이 유프라테스강의 물길을 돌려 강바닥을 얕게 만든 뒤, 성벽 밑으로 도시 안에 진입했습니다. 성벽에 대한 자만과 내부 분열이 겹친 결과였습니다.
Q. 바빌론의 유산 중 지금도 쓰는 것은 무엇인가요?
A. 1시간 60분·1분 60초·원 360도 같은 시간·각도 단위, 12별자리 체계, 그리고 비례에 입각한 법 감각이 대표적입니다. 도시와 탑은 사라졌지만 이 체계들은 일상에 남아 있습니다.